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소망의언덕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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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대황강과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자연경관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섬진강에는 늘 물이 많이 흐른다. 극심한 가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런데 대황강은 그렇지 않다. 이유는 주암댐이 있기에 그렇다. 늘 수위조절을 하기에 여름 장마나 태풍이 많은 비를 몰고 올 것이라는 기상예보 외에는 수문을 조금만 열기에 그렇다. 예전에는 태풍이 지나면서 엄청난 비로 인해 황톳물이 범람하곤 했다. 태풍이 지난 후에 강에 가보면 그지없이 깨끗한 물로 변해 있었다. 물론 강바닥도 마찬가지였다. 이끼 하나 없는 돌 그대로의 모양과 빛깔을 드러내어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강가에 바짝 다가가서 본 강바닥은 겉으로는 깨끗하다. 하지만 돌을 자세히 보면 이끼가 끼어 있고 푸른 물이끼들이 자라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마치 긴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도 많던 다슬기도 잘 보이지를 않는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바로 돌들이 구르지를 않기에 그렇다. 급한 물살에 의해 돌들이 굴러가면서 끼어 있는 이끼들이 닦여지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생동하는 강, 생동하는 삶, 세상을 깨우는 삶, 내 삶을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는 걸,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걸, 항상 깨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걸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영화, ‘국가부도의 날’ 중에서)고 말할 수 있다. 비판적 사유의 부재에서 기독교는 개독교가 되어가고, 사람은 ‘꼰대’가 되어간다. 우리는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우리의 삶을 대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가치관과 판단으로 평가하거나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확실한 토대 위에 나의 생각을 맞춰가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 탈상투화와 탈낭만화가 요구된다. 이것이 아닐 수 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과 낭만을 넘어서 낭만의 이면이나 어두운 면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현실에 고착되지 않고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와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스페인의 미술가인 ‘살바도르 달리’는 ‘위에서 바라본 십자가’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전혀 다른 십자가를 보게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고개를 떨구실 때 아래로 보이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늘 정면에서 바라본 십자가에서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하나님의 진한 세상 사랑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면 됐다, 이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이것이 진정 최선인가, 최상의 방법인가, 이것이면 정말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늘 던지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워가기를 멈추지 않는 자로 이 땅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