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상투화

소망의언덕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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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과 연말-연시라는 달력 속의 특정 절기가 들어가 있는 12월은 자칫하면 '상투성의 계절'이 된다. 사적 공간이든 공적 공간이든 12월은 갖가지 상투성과 가식의 문화가 곳곳을 지배한다. '상투성'에 묻혀있을 때, 그것은 '감옥'의 기능을 하게 된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반복되는 구호들 속에서 개개인들은 마치 대량생산 라인의 한 부품처럼 각자가 지니고 있는 개성과 사유의 공간들을 모두 점령당한 채 거대한 상투성의 물결 속에서 자신을 잊는다. '왕으로 오신 예수,' '메리 크리스마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송구영신’....이러한 틀에 밖인 구호들과 인사말들은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손을 맞잡고 이 인류에게 준 상투성의 전형적 구호들이다. 교회들은 갖가지 장식과 함께 성탄 프로그램으로 개인들을 집단 속으로 집어넣는다. 마치 굉장한 사건을 경험하는 것처럼 갖가지 성탄프로그램에 참여하지만, 정작 무엇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인가라는 물음과 대면할 시공간은 박탈당한다. 그 상투성은 '전염병'처럼 '사유 없음의 삶'을 생산하고 재생산 한다.

회개는 무엇일까요? 보통 교회에서 말하는 ‘회개’를 세상적 용어로 말한다면 그것은 ‘비판적 사고’라고 말할 수 있다. 늘상하는 행동과 생각들은 과연 옳은 것인가를 묻는 삶이라고 할 것이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일상들에서 그 이면을 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암흑(고난), 거기서 동방박사들은 별을 관측하는 기회를 가졌다. 고난은 그래서 희망과 기회가 될 수 있다. 농부는 가난하다. 왜 그런가. 그 이면의 이유를 물어야 한다. 농사짓는 농부는 빚만 늘어가는데 농사와 관계된 농기계 회사, 농자재 판매회사, 석유회사, 유통회사는 돈을 번다. 정말 문제임에 틀림없다. 농부들이 이런 ‘상투화’된 현실에 항거하는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왜요.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기에 그렇다.

독서 모임의 이유가 있다. 비판적 사고를 키우기 위함이다. 말씀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그런 관점(성경적 세계관)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함이다. 하여 주님께서 진정으로 꿈꾸셨던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한 귀퉁이에 삽질이라도 또한 못질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래서이다. 생각하지 않는 신앙은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은 형식화되고 화석화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아무런 힘과 감동과 능력이 없는 죽은 신앙 말이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텅 빈, 하여 ‘슬픈 가면무도회’가 펼쳐지는 슬픈 모습 말이다.

독서 모임에 힘을 써 주셨으면 한다. 마음을 다하여 책을 읽고 진지하게 모임을 참여해 주시기를 바란다. 나를 대면하는 진지한 시간이 된다면 그만큼 나는 자라나게 될 것이기에 그렇다. 나를 늘 말씀(진리)에 직면시키지 않는다면 ‘상투적 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