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 하는 어느 목사님의 글을 올립니다.

소망의언덕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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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74d09dab8f1.png                      “손가락 하나도 대지 마십시오.”

제 평생, 항상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젊은 날, 어떤 집회 끝에 어떤 성도님께서 제 손에 작은 쪽지를 쥐어주고 갔는데 나중 펴보니 바로 이 메시지 한 줄 뿐이었습니다. 웬일인지 이 짧은 한 토막글이 그렇게 날카롭고 아프고 불덴 인두로 가슴을 지진듯한 통증을 품게 되었습니다. 별것도 아닌 주제에 이미 교만의 싹이 트였던 것을 그분은 제게서 보았던 것이겠지요. 참으로 지렁이만도 못한 인간(사41:14), 티끌만도 못한 죄인(창18:27)이 망극하신 긍휼을 입고 살아왔는데 무엇이 이렇게 지각하지 못한 순간, 벌써 교만의 싹이 나온 사실 앞에 엄청난 두려움이 파도같이 휩싸였었습니다. 그 뒤로부터 오늘까지 계속 나의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데, 그 걸음마다 반드시 자고해 지는 제 영혼을 들여다보는 섬찍한 "사탄의 그림자", 아닌 "내 장막 안에 들어선 사탄의 몸통"을 보는 것 같아 심히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c s 루이스가 한 말입니다. 교만은 사탄의 속성이다. 그런데 교만이 그렇게 무서운 이유는 이 사탄의 속성인 교만은 가장 아름다움에, 가장 의로움에, 가장 거룩함속에, 가장 빛나는 데에, 그림자처럼 함께 하기 때문이라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교만, 자고함의 외양은 더럽고 추악함에 있지 않습니다. 가장 겸손하고, 가장 검소하고, 가장 거룩하고,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영성이 탁월하고, 가장 말씀이 좋은 곳에, 가장 의로움 속에 반드시 함께 깃들어 있고 따라 오는 무서운 실체입니다. 아무도 이 경계에서 예외인 사람은 없습니다. 귀하게 쓰임 받을수록, 섬김이 탁월할수록, 영성이 남다를수록, 지혜와 분별력이 뛰어날수록....

 바울 사도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혹독한 "가시"를 받았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렇습니다. 이 "가시" 처방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가시" 처방도 바로바로, 즉시 내려 주셔야만 소망 없는 우리는 삽니다.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말씀은 끝 날의 심판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그래서 주님은 사랑하는 종, 바울을 가시로 묶어 두셨고 말년에 옥중에 사슬에 메이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 방법 외에는 가련한 우리를 끝 날까지 살릴 방법이 없으셨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므로 귀히 쓰임 받는 중에 갑자기 낮아짐과 실패와 수욕이 있을 때, 메마름이 덮쳐 올때에 바로 그것이 나를 살리는 은총이요 정화 시키는 손길임을 감지하고 감사하십시다.

  항상 성공하고 항상 칭찬받고 항상 잘되고 항상 충만함이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음이 진정한 은총인 줄 압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