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다는 것.

소망의언덕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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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 창가에 앉아 조용히 말씀을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며든다. 

‘나는 지금 무엇을 읽고 있는가? 그리고 왜 읽고 있는가?’ 책장을 넘기는 행위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삶을 새롭게 하는 길이 숨어 있다. 최종원 교수는 『거꾸로 읽는 교회사』 8장에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통해 ‘읽기’의 깊은 의미를 짚어낸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 속에 살았지만, 모두 ‘읽는다는 것’이 인간 존재를 바꾸는 힘이라고 보았다.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그전까지 말씀은 라틴어로만 기록되어 있었고, 평범한 사람들은 교회와 성직자를 통하지 않고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루터의 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나 말씀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길’을 여는 혁명이었다. 이제 신자는 성경을 통해 교회를 거치지 않고도 하나님 앞에 직접 설 수 있게 되었다. 루터에게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독해가 아니었다. 말씀과 씨름하며 자기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경건한 실천이었다. 독서는 그에게 ‘존재가 새롭게 깨어나는 자리’였다. 주체적 인간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놀라운 행위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도 ‘읽기’를 깊이 있는 존재의 활동으로 보았다. 그녀는 “생각은 읽기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책을 통해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 안에서 질문을 품고,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아렌트에게 읽는다는 것은 고요한 자기 성찰의 시작이다. 소란한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타인의 말과 마주하고, 그 말을 내 안에서 반추하며 사유를 시작하는 자리이다. 읽기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수단이 아니라, ‘나를 나답게 만드는’ 작업이다. 타인의 사유를 통해 내 생각이 자라나고, 그 과정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진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뉴스, 글, 메시지를 스크롤 한다. 하지만 과연 진심으로 ‘읽고’ 있는 걸까요? 단지 눈으로 훑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삶으로 연결 짓는 읽기 말이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종교적인 의무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선 아래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조율하는 시간이다. 말씀은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빚어간다. 한 구절이 마음에 머무를 때, 그 말씀이 나의 상처를 만지고, 습관을 흔들고,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 그래서 말씀을 읽는 시간은 곧 은혜의 시간이다. 진정 회개, 즉 생각의 변혁을 가지는 시간이다. 

이번 한 주, 바쁜 일상 가운데에서 말씀 앞에 머무는 시간을 내보시길 바란다. 조용히 앉아 읽는 그 순간, 우리는 루터처럼 하나님 앞에 서 있고, 아렌트처럼 깊은 사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읽기’는 더 이상 소극적인 활동이 아니라, 나를 다시 만드는 놀라운 사건이 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