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몸으로 하는 것.

소망의언덕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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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아실 겁니다. 1960년대 초 미국 남부전역에서 흑인들의 인권운동이 격화 되던 때에 그가 엘라바마주 버밍엄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다. 그때 버밍엄시 백인 성직자 8명이 흑인들의 시위취지에는 동조하지만 조급하게 모든 것을 이루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며 시위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킹 목사님은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썼다. 소위 ‘버밍엄 편지’라는 것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의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직접 행동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흑인들에게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우리를 더 힘 빠지게 하는 것은 악의를 가진 자들의 절대적 몰이해가 아닙니다. 선의를 가진 이들의 어설픈 이해입니다. 그들은 직접행동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주장하지만, 직접행동과 그로 인한 긴장감이야말로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 위한 비폭력저항의 목적입니다. 당신들은 비폭력시위가 충돌을 유발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당신들은 지금은 시기상조라 말하지만 시간 자체는 정의의 편도 악의 편도 아닙니다. 시간은 파괴적으로도 건설적으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회개해야 할 것은 악의와 증오 뿐 아니라 소위 선량한 자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창조적으로 써야 하며, 정의의 일에는 시의적절한 때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미국을 인종차별의 사상누각이 아니라 인권과 존엄의 반석위에 놓아야 할 가장 적절한 때는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입니다”.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애기를 낳는 사람들은 소수다.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툰베리가 UN에서 연설한 것에 박수치며 환호한 것에 그치고 말았다.  그것에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기후위기에 동참했다는 생각을 하고는 그만이었다. 그 어느 국가에서도 과감하게 실제적 행동에 돌입한 국가는 없다. 오직 경제성장의 덫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실제적 위기에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인지 모른다. 여러 가지 이유로 변혁적 삶에 자신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잠시잠깐 후면 후패할 육체를 위해서는 못하는 것이 없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이는 적다.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다. 좀 더 안정적이 될 때까지는 유보하는 것이다. 유보된 하나님의 심판은 은혜이다. 그러나 우리의 유보된 순종은 순종이 아니다. 신앙은 몸으로 하는 것이다.  몸으로 순종하지 않는 그 무엇도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는다. 기도도 몸으로 시간을 내어 하는 것이다. 순종도 실제 몸이 움직여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는 것이다. 물질을 실제적으로 보내는 것이 순종이다. 그것도 때로는 내 삶이 휘청거릴 정도로 말이다. 그 순종은 지금이라는 현재에 행동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