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모습이 진실이다.

소망의언덕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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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전역하고 가을 농번기 한 철을 집에서 보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검게 그을리고 목덜미의 깊이 패인 주름, 지게를 진 자국으로 퇴색한 양어깨의 빛바랜 웃옷, 그리고 앞만 바라보시며 내딛는 발걸음...... 그 뒷모습에서 고단하게 살아오신 아버지의 모습과 애잔한 사랑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 모습을 꾸며 표정을 짓고 양손을 움직여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이면(裏面)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내게로 오는 것을 보고 난 뒤에 그가 돌아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 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으니!’ -미셀 트루니에의 ‘뒷 모습’중에서-


뒤쪽이 진실입니다. 뒷모습은 정직합니다. 눈과 입이 달려있는 얼굴처럼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과 의지에 따라 꾸미거나 속이거나 감추지 않습니다.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습니다. 얼굴 표정으로 감출 수 있는 앞모습과는 달리,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 보여주기 위함의 의도가 없는, 감추려 해도 들키고 마는 무방비의 뒷모습. 그래서 우리는 뒷모습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나다운 모습은 뒷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뒷모습에서 살아온 삶의 흔적들이 솔직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앞만 보고 앞모습에만 신경 쓰다 보면 이기적이고 즉흥적이고 외형적이며 감각적인 삶으로 점철될 수 있습니다.

때로 뒷모습은 쓸쓸합니다. 나에게 등을 돌리고 가는 사람,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때론 그 쓸쓸함이 더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이 더 애달플 때도 있습니다. 뒷모습은 너그럽습니다. 그 든든함과 너그러운 등에 의지하고 기댈 수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어머니의 등이 있어서 우리는 업혀서 안심하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 등이 있어서 소녀는 어린 시절에 이미 엄마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이 뒷모습을 아름답게 가꿔갈 수 있을까? 뒷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 앞에서도 마찬가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꾸밀 수 없는 뒷모습은 그 사람의 삶의 이력이 고스란히 남겨 있기에 어쩌면 뒷모습은 그 사람의 적나라한 진면목이라 할 것입니다.

나의 뒷모습은 다른 이에게 어떻게 보여질까요? 많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