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있는 삶

소망의언덕지기
202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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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모내기를 마쳤다. 모내기는 일정 간격을 두고 모를 심는다. 물론 모든 작물들은 그렇게 심는다. 여백이 필요한 것이다. 욕심껏 공간 없이 심으면 많은 소출이 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그 여백을 통해 바람이 지나고, 하늘을 향해만 크지 않고 적당하게 튼튼한 대나무로 자라며,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언젠가 대나무밭에 심어진 소나무를 본 적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대나무와 필사적 경쟁을 하며 위로 커야만 했다. 마치 대나무처럼 가늘게 하늘을 향한 소나무였다. 만일 대나무가 베어진다면 힘없이 부러질 소나무로 자란 것이다. 동양화에 많이 나오는 낙락장송은 넓은 장소에서 자란 소나무다. 옆에 경쟁자가 없으니 마음껏 품위를 나타내는 나무로 자라게 된다. 

적당한 여백, 이것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한다. 보기에 아름답게 한다. 늘 바쁘다고 말하는 게 현실을 잘사는 것이라는 생각들로 가득한 오늘날이다. 잠시라도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촘촘히 짜진 시간표 속에는 이야기가 없다. 그저 일만 있을 뿐이다. 여백 속에 생각이 있고, 변화가 있고, 이야기 만들어지는 것이다. 좀 천천히, 좀 늦게 걸어볼 일이다. 

전래 동화나 각 나라의 설화는 여백이 많은 이야기다. “옛날옛적에 어느 마을에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아니면 “옛날에 한 마을에 이상하게 생긴 아이가 태어났어”라고 시작되는 이야기 속에는 많은 여백이 있다. 그 가난한 선비, 이상한 아이가 내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상상하기도 하면서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현실을 극복하는 지혜가 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도나 네팔의 노인들에게 나이를 여쭤보면 “언젠가 비가 무지 많이 오고 천둥과 번개 치던 날에 태어났지”라고 말한다. 숫자 대신 자연과 삶의 궤적으로 시간을 기억하는 모습이 참 낭만적이면서도 정겹게 다가온다. 바쁘지 않게 자연의 흐름 속에 나를 맡기며 유유자적하는 모습에서 여유와 편안함을 보게 된다. 그런 문화 속에서 지난한 시간을 면면히 이어오는 힘이 나오는 것을 본다. 인간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소설이 처음에는 마음에 훅 들어오지만, 금세 실증이 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동화나 설화, 이야기는 오랜 시간 이어오고 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면에서 위대한 이야기꾼이다. 성경의 이야기는 수많은 여백, 그 여백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