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찰, 뻘짓이 필요한 시대

소망의언덕지기
조회수 106


782baf9b8a782.jpeg

얼마전 대학교에서 학원선교사역을 하시는 목사님과 오랜 시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의 결론은, 대학 교정의 풍경은 사뭇 낯설고도 아팠다. 캠퍼스의 낭만이나 철학적 사유, 혹은 세상을 향한 치기 어린 열정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대기업'이라는 단일한 목표와 '돈'이라는 명확한 가치뿐이다. 학생들은 소위 '헤찰(한눈파는 짓)'이나 '뻘짓'이라 불리는, 취업과 직결되지 않는 모든 행위를 시간 낭비로 치부한다. 오로지 정해진 성공의 공식을 향해 경주마처럼 달리는 그들에게, 공식에서 벗어난 삶은 곧 '실패'라는 공포로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부모와 세상이 설계해 놓은 좁은 통로를 무사히 통과하는 것만이 정말 인생의 정답일까? 효율성만을 극대화한 삶이 과연 우리를 진정한 행복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생각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돌발 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상상력'과 '회복탄력성'이 고갈되고 있다는 신호다. 친구들과 밤새 무의미한 논쟁을 벌이고,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나며, 때로는 전공과 상관없는 분야에 몰입해 보는 '뻘짓'들은 사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이런 '비효율적인' 시간들이 모여 생각의 외연을 확장하고, 나라는 사람이 무엇에 웃고 우는지 발견하게 한다. 타인이 정해준 성공의 잣대에 나를 끼워 맞추는 '규격화된 삶'에는 '나'라는 주체가 존재할 틈이 없다.

어린 새가 처음 날갯짓을 시작할 때, 그 모습은 결코 우아하지 않다. 새는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그 순간들을 인간의 시각으로 본다면 '실패'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의 입장에서는 그 추락이야말로 비행을 완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떨어지는 동안 새는 바람의 결을 느끼고, 자신의 날개 근육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몸소 체득한다. 만약 추락이 두려워 둥지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 새는 영원히 하늘을 오를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 공식'에서 미끄러지는 것, 목표했던 기업에 떨어지는 것, 방황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나만의 비행법을 배우는 '도전'의 과정이다.

인생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수없이 떨어지고 다시 솟구치는 거대한 비행의 연속이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방황과 시행착오가 있다면, 그것은 추락이 아니라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근육을 단련하는 시간임을 잊지 말자. 당신의 날개는 지금 그 '뻘짓'과 '도전'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신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바로, 거룩하고 남들 보기에 멋진 사람으로 변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시대의 주류문화를 거슬러 거룩한 백성으로 자라가는 과정에는 수없는 떨어짐의 반복 후에 가능한 것이다. 그 거룩함을 향해 도전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어느 날 그 멋진 모습을 볼 것이다. 그 날을 오랫동안 봐주며 참아 주며 기도해주며, 또한 나를 향해서도 그렇게 봐주고 참아주고 기도하며 걸어갈 일이다.

# 첨부한 사진은, 남태평양에 위치한 피지로 여행온 호주의 아버지와 아들이다. 식사하면서 둘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는 모습에서 한국의 부자지간의 안타까움이 생각나서 양해를 구하고 한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