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단상

여행하게 되면 묵어가는 장소는 등급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호텔이다. 하루의 여정을 끝내고 간 호텔이 좋다. 왜 좋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호텔은 집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가. 집은 의무공간이다.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즉각 처리 가능한 일도 있고, 큰맘 먹고 언젠가 해치워야 할 해묵은 숙제들도 있다. 집은 일터이기도 하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진열장이기도 하다. 한 책에서 말했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지러진다 해도 떠나면 그만이다. 하여 호텔의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마치 새집에 들어선 것 같은 설렘을 느낀다. 호텔은 집요하게 기억을 지우는 것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그래서 좋은 것이 아닐까.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한 상태에 접근한다. 대부분의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반대로 계속해서 여행하면 행복할까? 아니다. 그 삶은 또 다른 일상이 되기에 그렇다. 일상이 지루하지 않으려면, 마치 여행객이 되는 것처럼 설레임과 기분좋음으로 가득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봄이다. 일상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꿈틀댄다. 모든 것이 죽은 듯 보이는 사막에도 생명체가 뜨거운 모래 속에서 꿈틀대듯 말이다. 일상은 지루하지 않다. 신앙의 안경으로 일상을 바라보라. 흥미로운 일들이 곳곳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 그것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이 즐겁고 때론 고통이기도 하지만 목적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집을 떠나면 이방인으로의 경험을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이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하여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곳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안정적으로 뭔가를 꿈꾸며 현재에 성실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예전 농촌지역 목회할 때에도 시찰회에서 여행을 해마다 계획했었다. 그러나 경제적 여건상 국내여행이었다. 15년을 있으면서 중국에 한 번 갔었다.. 도시는 달랐다. 자주 가는 편이다. 물론 저는 첫 시찰회여행이었지만, 시찰회에 들어온지 2년이 밖에 안 되어서다. 

한 인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하는 것들 가운데는 독서, 좋은 사람과의 만남,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있다. 그 중에 세 가지를 모두 하고 온 시간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은 가슴이 뛸 때 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