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좋은 일과 안 좋은 일, 기쁨과 슬픔, 눈물과 웃음, 날 때와 죽을 때, 세울 때와 헐 때…. 이처럼 인생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 하면서 만들어진다. 밝음과 어둠을 통해서 자라나게 된다.
얼마 전 남원에 있는 ‘김병종 시립미술관’에 잠깐 다녀왔다. 그는 작품 속에 바람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바람의 존재를 느낌으로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소리라고 한다. 바람이 댓잎 사이들로 사운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모습을 캔버스게 담았다. 작가는 이 현상을 시각의 청각화라고 부른다. 이 지점은 호흡을 생각하게 한다. 폐 안에 공기를 가득 채웠다가 흘려보내는 이 단순한 운동 말이다. 들숨과 날숨, 채우고 비우기,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기, 생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받아들이기와 내보내기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워줘야 한다. 이 단순한 동작을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무엇이든지 채우려고만 한다. 하지만 적당히 비워내지 못한다면 질식하고 말 것이다.
긍정과 부정, 밝음과 어둠을 들숨과 날숨으로 비유하고 싶다. 긍정과 밝음만을 기대하는 인생에 불현 듯 찾아온 부정과 어둠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바른길에 서 있는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옳은 방법인가, 하는 질문의 자리에서 뒤돌아보는 것이다. 그 뒤돌아봄이 나를 깨우는 것이다. 마치 차에 장착된 블랙박스와 같다. 블랙박스는 사고 기록만 남긴다. 정상 운행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지워진다. 실패하고 잘못된 길로 갔던 일들만 기억에 남기는 것이다.
그러나 들숨과 날숨이 있어야 생명이 유지 되듯이 정상 운행, 아무 일 없음도 중요한 것들이다. 실패한 것들만 사고처럼 기억에 남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워진 날 들에도 중요한 것들이 있다. 아무 일 없었던 날 들에 숨어 있던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을 보며 감사하며 감격하는 사람이 김병종 작가의 바램처럼 작품 속에 바람을 담은 사람이 아닐까요.
낮과 밤, 좋은 일과 안 좋은 일, 기쁨과 슬픔, 눈물과 웃음, 날 때와 죽을 때, 세울 때와 헐 때…. 이처럼 인생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 하면서 만들어진다. 밝음과 어둠을 통해서 자라나게 된다.
얼마 전 남원에 있는 ‘김병종 시립미술관’에 잠깐 다녀왔다. 그는 작품 속에 바람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바람의 존재를 느낌으로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소리라고 한다. 바람이 댓잎 사이들로 사운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모습을 캔버스게 담았다. 작가는 이 현상을 시각의 청각화라고 부른다. 이 지점은 호흡을 생각하게 한다. 폐 안에 공기를 가득 채웠다가 흘려보내는 이 단순한 운동 말이다. 들숨과 날숨, 채우고 비우기,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기, 생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받아들이기와 내보내기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워줘야 한다. 이 단순한 동작을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무엇이든지 채우려고만 한다. 하지만 적당히 비워내지 못한다면 질식하고 말 것이다.
긍정과 부정, 밝음과 어둠을 들숨과 날숨으로 비유하고 싶다. 긍정과 밝음만을 기대하는 인생에 불현 듯 찾아온 부정과 어둠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바른길에 서 있는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옳은 방법인가, 하는 질문의 자리에서 뒤돌아보는 것이다. 그 뒤돌아봄이 나를 깨우는 것이다. 마치 차에 장착된 블랙박스와 같다. 블랙박스는 사고 기록만 남긴다. 정상 운행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지워진다. 실패하고 잘못된 길로 갔던 일들만 기억에 남기는 것이다.
그러나 들숨과 날숨이 있어야 생명이 유지 되듯이 정상 운행, 아무 일 없음도 중요한 것들이다. 실패한 것들만 사고처럼 기억에 남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워진 날 들에도 중요한 것들이 있다. 아무 일 없었던 날 들에 숨어 있던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을 보며 감사하며 감격하는 사람이 김병종 작가의 바램처럼 작품 속에 바람을 담은 사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