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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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현재 완화 병동에 입원해계십니다. 예전에는 호스피스 병동이라고 불렀습니다. 벌써 40여 일이 다 되어 갑니다. 그전에 지역 병원에 입원한 것까지 합하면 50일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와 형제들의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것은 어머니의 시간표에 우리의 시간표를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아픔이 모두의 아픔이 되는 시간입니다. 한 사람의 불편함이 모두의 불편함으로 나타납니다. 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어머니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큽니다. 논농사야 사람의 손이 덜 가는 것이지만, 밭농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는 속담이 있듯이 손 하나가 아쉬 울 때에 어머니가 안 계시니 곁에 있는 제가 정신없이 바쁩니다. 고추밭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가 나를 빨리 따가라고 손짓하고, 고랑에는 풀들이 무성하고, 무 배추밭에는 무가 나를 솎아가라고 아우성이고, 들깨밭에서는 왜 나를 빨리 털어 가야지 하고, 콩 밭에 콩도 이제 베어 말밀 때가 되지 않았냐고 난리입니다. 이 와중에 형제들이 당번으로 돌아가며 병원에 보호자 노릇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도 주기적으로 가야 하니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사시는 골목에 적막감이 감도는 것입니다. 최근에 옆집에 사시는 당숙모까지 몸이 불편하여 잠시 아들 집에 가 계시니 동네 할머니들이 너무 조용해서 싫다고들 하십니다. 날마다 만나 웃고, 먹을 것 나누고, 서로 의지 되어 살아오셨는데, 한 사람의 부재는 골목에 웃음이 사라지고 쓸쓸함이 커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한 사람의 자리가 비는 때부터 벌어진 일입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듯이 어머니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큽니다. 하루에 최소 한 번은 논밭으로 다니셨던 발걸음과 허리숙여 움직이셨던 그 움직임이 놀라운 일이었음을 봅니다. 젊은이는 조그마한 밭의 잡초를 메지 못하지만, 늙은이는 밭의 잡초를 메고야 맙니다. 비록 연약하고 느리지만 아침 일찍부터 해 질 녘까지 꼼지락거림으로 그 일을 이루고야 마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정말 위대하다는 사실을 봅니다. 존재의 무게감의 크고 작음은 사람의 편견입니다.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도 아닙니다. 존재와 부재의 문제일 뿐입니다. 한 사람의 부재는 아쉬움, 서운함, 쓸쓸함, 발걸음의 끊어짐, 웃음이 사라지는 골목의 결과를 낳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은 위대합니다. 또한 날마다의 작은 움직임이 놀라운 일을 이룸을 보게 됩니다. 하루의 힘은 어마어마 합니다. 하루가 쌓여 한 달, 한 달이 쌓여 일 년, 일 년이 쌓여 10년이 됩니다. 누가 알아주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루를 어떻게 살았느냐의 문제입니다. 주어진 하루에 성실한 것이 잘 산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