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은 저항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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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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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를 지나면서 잔잔한 물의 표면에 작은 돌 하나를 툭 던집니다. 고요한 세상에 돌멩이 하나만큼의 파문이 일어납니다. ‘삼보일배’가 있습니다. 세 걸음 걷고 난 후에 온몸을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산책이 아닙니다. 보행입니다. 걷기입니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걷기는 ‘저항’의 상징입니다. 억울하지만 힘이 없어서 그 거대한 벽을 향한 간절한 외침이 ‘삼보일배’이며 걷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처럼 저항하는 자들과 저항하는 삶과 행동을 통해 변화해 왔습니다. 부조리와 불의에 저항하는 자들에 의해 세상은 발전해왔습니다. 걷기는 별것 아닌 작은 일들에 대한 기본적 존재철학의 발전에 알맞은 것입니다. 걷는 동안 자신에 대하여, 자신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하여, 혹은 자신과 타인들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하게 되고 뜻하지 않은 수 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신앙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길들여 지지 않는 것입니다. 저항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삶입니다. 신앙은 저항하는 삶, 길들여 지지 않는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의 초대입니다. 문제는 ‘무엇에 대해 저항하고 길들여 지지 않는 것인가’입니다.


그 저항과 길들여 지지 않음은, 기존의 질서, 가치, 사상, 주류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기존의 질서를 넘어 새 질서로, 기존의 가치와 사상을 새로운 가치와 사상으로, 주류의 삶에서 비주류를 추구하는 삶으로의 저항입니다. 이것을 ‘전복적 삶’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에는 그런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살아냈던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 길을 걸어갔던 그분들이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입니다. 하늘의 허다한 별처럼 많습니다. 그들은 ‘나그네’ 입니다. ‘걷는 자’입니다. 우리 또한 그 대열에 합류하여 걸어가는 자들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걸어가는 사람, 그 사람이 우리의 정체성 입니다. 저항하는 자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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