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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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건축 선교 후원금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출발일이 가까워지면서 애가 타면서, 안심도 되면서, 고민도 된다. 현지에서는 기초공사를 시작하고 우리를 바라보며 기다린다는 소식에 더 그러했다. 와중에 한 목사님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목사님 부족분이 얼마나 되시는지 여쭈어도 실례가 안 될까요?”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생각이 복잡했다. 전화를 드렸다. 상황을 설명했다. 최선을 다해보시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그때 제 마음에 고(故) 신영복 교수의 글이 떠올랐다. ‘낙락장송이 되려 하지 말고 더불어 숲을 이루라’는 말이었다. 여러분들의 작은 손길이 모여서 선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작은 손길들은 어디로 가고 제가 ‘낙락장송’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순간 있었음에 부끄러워진 것이다. 다시 나를 본다. 주님이 손 놓아 버리시면 흙먼지임에 불과한 자임을 말이다.

나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참 장관이고 압권이다. 그 밑에 보이지 않는 뿌리들까지 서로 얽히고 지탱하면서 숲은 더욱 견고해지는 것이다. 뭇 생명들의 안식처가 되어가는 것이다.

꼭, 실질적 숲이어야겠는가. 나무가 사람이라면 우리는 연대의 방법으로. 적극적 연대가 어렵다면 한 번씩이지만 꾸준한 만남으로, 이야기로 우리는 촘촘한 수풀들로 생명을 이어가는 숲이 되어가지 않겠는가. 사람이 상처를 받는 곳도 사람이지만, 또 위로를 얻고 치유를 얻는 곳도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론 상처받고, 주춤하지만 동시에 또 어루만지고 어깨동무하며 나아간다. 다만, 호흡이 필요하다. 가쁘지 않고 지치지 않게,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손을 내밀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조급함보다는 한 발자국 늦는 어수룩함으로, 때로는 다른 이 다리를 쉴 때 함께 멈춰서 아무런 주저 없이 다리를 주물러 줄 수 있는 뻔뻔하고도 대범한 그 거리낌 없음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무로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내가 제대로 서 있어야 한다. 큰 나무가 될 필요는 없다. 각자 각자 생긴 대로, 그 모습으로 제대로 서 있으면 된다. 어찌 비틀거리며 다른 이를 부축해주겠다고 어깨를 내줄 수 있겠는가.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튼튼한 마음으로, 그리고 단단한 체력으로 하루를 버티고 살아야,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고 그 누군가에게 힘을 얻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따라서 제대로 서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지극한 외로움 속에서도 쉽게 쓰러지지 말아야 한다. 눈물을 흘릴 때도 분명 있을지언정, 그 외로움 안에서 곧게 빛나야 한다.

내 옆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귀하다. 그들이 있어 내가 있음을 다시 본다. 홀로 서 있는 나무는 거센 바람에 꺽이기 쉽다. 함께 함이 힘이다. 함께 하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얼마나 멋진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형제자매들이 어울려 지내는 모습!”(시133:1, 메시지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