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여름에.....

소망의언덕지기
2026-07-31
조회수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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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햇볕에 뜨거운 기운과 함께 훅 하고 불어오는 뜨뜻한 바람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삼복더위라고 여름 더위의 절정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며칠 전부터 잔디밭 곳곳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시냇물도 날마다 줄어들고 있다. 다급한 마음에 시냇물에 물호스를 연결하여 잔디밭을 적셔보지만 역부족이다. 타들어가는 범위가 점점 더 늘어가기 때문이다. 한 낮이면 그 타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확연하게 보인다. 말라비틀어져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상황이 더 지속되면 결국은 말라죽게 된다.

농촌 들녘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 심지어 잡초들까지 성장을 멈추고 자기 몸 추스리는 모습이다. 낮에는 잔뜩 움츠려 마치 곧 죽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밤이 되면 일교차에 의해 잔디밭과 작물들의 잎에 이슬이 맺혀 축축해 지면서 본래의 생기넘치는 모습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해가뜨면 그 상황은 다시 달라진다. 


타들어가는 잔디와 농작물, 줄어드는 시냇물, 이 지역에 있는 몇몇 저수지의 저장 수량의 급격한 감소 등의 문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인해 바로 해결된다. 날마다 애태우며 골짝 물을 공급하는 것, 농부가 그 모습을 보며 애태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 그것이면 그 모든 애탐과 근심과 걱정과 초라한 모습은 사라진다. 그 대신 생명들의 환희의 춤이 벌어진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7:38)라고 외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39절)는 말씀에서 온 세상의 소망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소망을 발견하게 된다.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은혜와 능력만이 말라비뚤어진 심령과 숨이 끊어지기 일보직전의 한국교회, 에스골골짜기의 마른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변화산 이야기라고 하는 사건 이후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산 아래 내려와서 해결한 문제는 귀신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서 아이를 고치는 사건이다. 산 아래 제자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예수님이 오셔서 그 문제를 해결하신다. 그리고 나중에 제자들이 조용히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 하였나이까?” 그러자 주님께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막9:29~30). 누가복음에는 같은 사건의 시작을 “기도하시러 산에 가셨다”로 시작한다(눅9:28).

사도행전을 일명 성령행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도행전의 밑바닥에 면면히 흐르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약속의 말씀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행1:8)이다. 


그리고 성령의 일하심의 대부분은 말씀을 드러내고,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도록 돕는 역사임을 성경은 증언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도록 말씀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요16:13~14; 딤후3:15~17).


결국 핵심은 ‘말씀과 기도’라는 결론이다(딤전4:5).


진부한 결론이라 말할 수 있다. 

새롭고 쌈빡한 무엇이 없는가, 하고 이곳 저곳 기웃거리고 찾아다녀보지만 그곳에는 해결책이 없다. 다시 ‘옛적 길’로 가는 것이 답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모두가 당장의 안일함과 눈앞의 외교적 수단, 거짓 평화에 속아 잘못된 길로 달려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외치신 말씀이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새롭고 화려해 보이는 세상의 길(외교적 꾀, 우상숭배, 탐욕)을 멈추어 서서 바라보고, 조상들이 하나님과 맺었던 기본적인 언약의 말씀, 즉 순종과 회개의 옛길로 돌아오라는 안타까운 촉구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백성들은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라며 거절했고, 결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오늘도 수도원에서 보는 것은, 부지런히 주야로 말씀을 읽고(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말씀에 성령의 일 하심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그리고 말씀을 살아낼수 있는 은혜를 달라는 기도(내소원만 주야장천 떼쓰는 게 아닌)가 필요한 시대임을 본다. 


비, 

하늘에서 내리는 비,

그 비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이다. 


갑자기 ‘비가 오도다’라는 말에서 ‘비는 몇도인가?’라는 넌센스가 생각난다. 비는 5도다. 보통 맥주는 알코올 농도가 5도다. 새술에 취한 초대교회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예전에, 주님이 찾아오시기전에 즐겼던 그 주님(?) 5도, 적당한 취기에 서로를 더 이해하고, 마음이 넓어지고, 서로를 품게 되고, 미래의 희망에 벅차 목청껏 노래했던 시절. 그 새술에 취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