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 있었던 교회에서 예배당과 사택을 건축하게 되었다. 흙벽돌을 직접 만들어 성도들과 함께하는 과정이었다. 그 일로 인하여 성도들과 함께 흙 짓기를 한동안 했었다. 도시에서 실패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젊은 분들이 전도 되고 그들과 함께 집짓기를 한 것이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 3년 다녔었다. 그러다 10여 년이 지나 신학을 하게 되고, 집짓기를 하게 된 것이다. 철없던 때와는 달리 조금 철 들고 난 후에 몸으로 체험하는 삶의 자리, 밥벌이는 많은것을 보게했다. 모두가 힘들게 한 가정을 책임지는 모습, 벌이가 시원치 않으면 찾아오는 불안감을 넘어 두려움까지 갖게 하는 삭막한 현실, 그 가운데 견디며 살아가는 숭고한 인간의 모습 등을 본 것이다.
광야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가난한 자와 약자와 병자들의 편에 섰었던, 그리고 같이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종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에 대해 생각한다. 예수를 전하는 자들에게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인생의 고난과 궁핍은 너무나 고통스럽겠지만 어쩌면 축복일지 모른다. 그가 따르려고 하는 분의 삶의 고통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굴레와 울타리가 그를 보호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지배받는다. 권력자가 되고 돈이 많아지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공감 능력이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하물며 예수를 따른다는 자가 예수의 삶과 정반대되는 환경에서 살아갈 때 그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 아닌가? 멋진 서양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진 예수님의 모습, 이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목수일로 인해 투박해진 손과 거친 마디마디, 그 일로 다부진 모습의 예수님이 분명할 것이다. 약자, 쇠외된 자, 비주류 인생들의 애환을 잘 아셨을 주님 말이다.
불법 경영권 승계 문제로 재벌의 힘 앞에 무너진 법조계를 보았고, 똑같은 노동의 시간이지만, 잘 나가는 기업에서 일한다는 한 가지 조건으로 수억의 성과급을 달라고 하는 현실 그리고 그 성과급이라는 것을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가는 모습에서 허탈과 깊은 분노와 아쉬움 그리고 내심 부러움이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또한 그 이후에 인류역사에서 보여준 군상들의 모습 때문에 마음 한켠이 서글퍼진다. 펄벅 여사의 '대지'라는 소설에서 보여준 왕룽일가의 가족들의 모습이 재현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따름이 무엇인지를, 그것도 구체적 삶의 현실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한다. 인생은 춘몽(春夢)이라 하지 않던가! 봄기운에 얼핏 잠든 사이에 꾼 꿈처럼 짧은 것인데, 영원하지 않은 것에 목표를 두고 일희일비할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는 오늘이다.
주님 앞에 서는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았던 바울을 생각해 본다.
전에 있었던 교회에서 예배당과 사택을 건축하게 되었다. 흙벽돌을 직접 만들어 성도들과 함께하는 과정이었다. 그 일로 인하여 성도들과 함께 흙 짓기를 한동안 했었다. 도시에서 실패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젊은 분들이 전도 되고 그들과 함께 집짓기를 한 것이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 3년 다녔었다. 그러다 10여 년이 지나 신학을 하게 되고, 집짓기를 하게 된 것이다. 철없던 때와는 달리 조금 철 들고 난 후에 몸으로 체험하는 삶의 자리, 밥벌이는 많은것을 보게했다. 모두가 힘들게 한 가정을 책임지는 모습, 벌이가 시원치 않으면 찾아오는 불안감을 넘어 두려움까지 갖게 하는 삭막한 현실, 그 가운데 견디며 살아가는 숭고한 인간의 모습 등을 본 것이다.
광야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가난한 자와 약자와 병자들의 편에 섰었던, 그리고 같이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종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에 대해 생각한다. 예수를 전하는 자들에게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인생의 고난과 궁핍은 너무나 고통스럽겠지만 어쩌면 축복일지 모른다. 그가 따르려고 하는 분의 삶의 고통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굴레와 울타리가 그를 보호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지배받는다. 권력자가 되고 돈이 많아지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공감 능력이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하물며 예수를 따른다는 자가 예수의 삶과 정반대되는 환경에서 살아갈 때 그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 아닌가? 멋진 서양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진 예수님의 모습, 이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목수일로 인해 투박해진 손과 거친 마디마디, 그 일로 다부진 모습의 예수님이 분명할 것이다. 약자, 쇠외된 자, 비주류 인생들의 애환을 잘 아셨을 주님 말이다.
불법 경영권 승계 문제로 재벌의 힘 앞에 무너진 법조계를 보았고, 똑같은 노동의 시간이지만, 잘 나가는 기업에서 일한다는 한 가지 조건으로 수억의 성과급을 달라고 하는 현실 그리고 그 성과급이라는 것을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가는 모습에서 허탈과 깊은 분노와 아쉬움 그리고 내심 부러움이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또한 그 이후에 인류역사에서 보여준 군상들의 모습 때문에 마음 한켠이 서글퍼진다. 펄벅 여사의 '대지'라는 소설에서 보여준 왕룽일가의 가족들의 모습이 재현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따름이 무엇인지를, 그것도 구체적 삶의 현실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한다. 인생은 춘몽(春夢)이라 하지 않던가! 봄기운에 얼핏 잠든 사이에 꾼 꿈처럼 짧은 것인데, 영원하지 않은 것에 목표를 두고 일희일비할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는 오늘이다.
주님 앞에 서는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았던 바울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