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톨스토이의 희곡 '있는 자들의 한가한 대화'에는 우리를 몹시 당혹스럽게 하는 풍경이 등장한다. 화려한 식탁에 둘러앉은, 이른바 '교양 있는' 어른들은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잘못 살고 있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벌인다. 그들은 스스로를 비판하며 정의와 도덕을 논한다. 그러나 비극은 그다음이다. 대화가 끝나고 식탁을 떠날 때,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삶을 단 1도 수정하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던 한 청년은 마침내 절규하듯 외친다.
"저는 결코 저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이 청년의 외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을 찌르는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우리는 예배당이라는 식탁에 모여 "주여,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빛을 잃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 고백이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한가한 대화'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 12절)에서 준엄하게 선포한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여기서 '어둠의 일'은 단순히 흉악한 범죄만을 뜻하지 않는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 안락함이 주는 관성에 젖어 삶을 고치지 못하는 '영적 태만'이야말로 가장 깊은 밤의 증거일 것이다. 어른들의 식탁 위에서 오고 간 자성(自省)의 목소리들은, '빛의 갑옷'을 입기 위한 결단이 아니라 오히려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자신들을 가리기 위한 세련된 위장이었다. 그리고 빛을 길로 가려는 사람들을 향한 걸림돌일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식탁 위에서의 '화려한 반성'이 아니라, 어둠의 옷을 실제로 '벗어 던지는' 동작이다. 밤이 깊었다는 것은 곧 낮이 올 것이라는 긴박한 신호이다. 빛이 오고 있는데 여전히 어둠의 잠옷을 입고 "나는 어둠이 싫다"고 말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빛을 기다리는 자의 태도가 아니다.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외쳤던 청년의 분노는, 어쩌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위선적인 우리를 향해 던지시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힘들게 한다. 전에 위선적 삶을 깨버리는 것, 주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나아가는 결단과 실제적 행동, 현실에 주저앉고 싶은 관성을 거슬러서 한 걸음을 떼는 대단한 용기 또한 필요하다. 아니 어쩌면 너무 쉬울 수도 있다. 그냥 한 걸음을 내디디면 되기에 그렇다. 삶은 의외로 ‘그냥’하는 것으로 놀라운 일을 이루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대로 ‘그냥’ 해봅시다.
그냥!
톨스토이의 희곡 '있는 자들의 한가한 대화'에는 우리를 몹시 당혹스럽게 하는 풍경이 등장한다. 화려한 식탁에 둘러앉은, 이른바 '교양 있는' 어른들은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잘못 살고 있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벌인다. 그들은 스스로를 비판하며 정의와 도덕을 논한다. 그러나 비극은 그다음이다. 대화가 끝나고 식탁을 떠날 때,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삶을 단 1도 수정하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던 한 청년은 마침내 절규하듯 외친다.
"저는 결코 저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이 청년의 외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을 찌르는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우리는 예배당이라는 식탁에 모여 "주여,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빛을 잃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 고백이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한가한 대화'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 12절)에서 준엄하게 선포한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여기서 '어둠의 일'은 단순히 흉악한 범죄만을 뜻하지 않는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 안락함이 주는 관성에 젖어 삶을 고치지 못하는 '영적 태만'이야말로 가장 깊은 밤의 증거일 것이다. 어른들의 식탁 위에서 오고 간 자성(自省)의 목소리들은, '빛의 갑옷'을 입기 위한 결단이 아니라 오히려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자신들을 가리기 위한 세련된 위장이었다. 그리고 빛을 길로 가려는 사람들을 향한 걸림돌일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식탁 위에서의 '화려한 반성'이 아니라, 어둠의 옷을 실제로 '벗어 던지는' 동작이다. 밤이 깊었다는 것은 곧 낮이 올 것이라는 긴박한 신호이다. 빛이 오고 있는데 여전히 어둠의 잠옷을 입고 "나는 어둠이 싫다"고 말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빛을 기다리는 자의 태도가 아니다.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외쳤던 청년의 분노는, 어쩌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위선적인 우리를 향해 던지시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힘들게 한다. 전에 위선적 삶을 깨버리는 것, 주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나아가는 결단과 실제적 행동, 현실에 주저앉고 싶은 관성을 거슬러서 한 걸음을 떼는 대단한 용기 또한 필요하다. 아니 어쩌면 너무 쉬울 수도 있다. 그냥 한 걸음을 내디디면 되기에 그렇다. 삶은 의외로 ‘그냥’하는 것으로 놀라운 일을 이루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대로 ‘그냥’ 해봅시다.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