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지명은 한 사람의 생애와 철학, 그리고 남은 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를 담고 있는 아주 특별한 기록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Excuse me, for not getting up."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 윌리엄 보든 (선교사)는 "No Reserve, No Retreat, No Regrets." (남김없이, 후퇴 없이, 후회 없이.)라고 썼다고 한다.
제임스 노블 멕켄지(James Noble Mackenzie) 선교사님을 소개하고 싶다. 호주 장로교 소속으로 한국에 파견되었으며, 그와 그의 가족(부인과 딸들)은 대를 이어 한국을 사랑하고 봉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1910년부터 1938년까지 약 28년 동안 부산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당시 가장 소외받던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쳤다. '부산 나병원‘을 운영하며 환자들의 치료와 자립을 도왔다. 그는 다시 호주로 돌아가 규모가 큰 교회에서 목회하며 총회장까지 역임했다. 그의 딸들인 헬렌 맥켄지(매혜란)와 캐서린 맥켄지(매혜영) 또한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돌아와 부산에 일신기독병원을 설립하여 한국의 임산부와 아기들을 돌보는 데 헌신했다. 맥켄지 선교사 부부와 그의 두 딸의 헌신은 단순한 종교 활동을 넘어, 한국의 근대 의료 체계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번 동시찰회 호주 여행 중에 맬버른의 변두리 공동묘지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을 들여 멕켄지 선교사님의 묘지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 그의 묘비명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Friend of Korean Lepers", 해석하면 ’한국 한센병 환자들의 친구‘이다. 1956년 7월 2일, 91세로 죽었다는 내용뿐이다. 어느 교회 목회, 총회장 역임 등의 내용은 없었다. 단순히 ’한국 한센병 환자들의 친구‘라는 문구 하나였다. 그것으로 기억되고 싶었을 뿐인 인생을 살다 주님의 품에 이른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표지석의 크기였다. 가로세로 20cm 정도 되는 표지석이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을 따라,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살았던 그 삶이면 족하다는 것이 그의 인생관이었음을 보게 된다. 그 옆에 그의 아내의 묘비도 있었다. 그곳에는 '멕켄지의 아내'라는 문구 하나였다.
나는 어떤가?
’주님 기억하시면 족하리‘라는 찬양 가사처럼 고백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묘지명은 한 사람의 생애와 철학, 그리고 남은 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를 담고 있는 아주 특별한 기록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Excuse me, for not getting up."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 윌리엄 보든 (선교사)는 "No Reserve, No Retreat, No Regrets." (남김없이, 후퇴 없이, 후회 없이.)라고 썼다고 한다.
제임스 노블 멕켄지(James Noble Mackenzie) 선교사님을 소개하고 싶다. 호주 장로교 소속으로 한국에 파견되었으며, 그와 그의 가족(부인과 딸들)은 대를 이어 한국을 사랑하고 봉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1910년부터 1938년까지 약 28년 동안 부산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당시 가장 소외받던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쳤다. '부산 나병원‘을 운영하며 환자들의 치료와 자립을 도왔다. 그는 다시 호주로 돌아가 규모가 큰 교회에서 목회하며 총회장까지 역임했다. 그의 딸들인 헬렌 맥켄지(매혜란)와 캐서린 맥켄지(매혜영) 또한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돌아와 부산에 일신기독병원을 설립하여 한국의 임산부와 아기들을 돌보는 데 헌신했다. 맥켄지 선교사 부부와 그의 두 딸의 헌신은 단순한 종교 활동을 넘어, 한국의 근대 의료 체계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번 동시찰회 호주 여행 중에 맬버른의 변두리 공동묘지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을 들여 멕켄지 선교사님의 묘지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 그의 묘비명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Friend of Korean Lepers", 해석하면 ’한국 한센병 환자들의 친구‘이다. 1956년 7월 2일, 91세로 죽었다는 내용뿐이다. 어느 교회 목회, 총회장 역임 등의 내용은 없었다. 단순히 ’한국 한센병 환자들의 친구‘라는 문구 하나였다. 그것으로 기억되고 싶었을 뿐인 인생을 살다 주님의 품에 이른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표지석의 크기였다. 가로세로 20cm 정도 되는 표지석이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을 따라,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살았던 그 삶이면 족하다는 것이 그의 인생관이었음을 보게 된다. 그 옆에 그의 아내의 묘비도 있었다. 그곳에는 '멕켄지의 아내'라는 문구 하나였다.
나는 어떤가?
’주님 기억하시면 족하리‘라는 찬양 가사처럼 고백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