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남은 많은 것을 새롭게 하는 일을 만든다. 상대방에 대해 더 알게 되고, 대화를 통해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도전을 주기도 한다. 힘을 내게 하고, 그 길을 더 성실하게 살아가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특히 인격적 존재의 만남,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을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도 만남을 귀하게 여긴다. 그 시간이 길면 좋겠지만 극히 짧은 만남을 통해서도 획기적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목사님과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향린교회를 담임하시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각성시키고 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교회로 나아 가게 하는 일에 강한 영향력을 끼쳤던 고(故) 홍근수목사님의 부인, 김영 목사님을 통해서이다. 여성 목사로서 당시 교회 내에서 움츠렸고 숨어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던 여성들을 한 인격적 존재이며 일꾼들로 세워가는 일을 하셨던 분이시다. 물론 지금도 여성들의 자리는 교회에서 너무나 미미한 현실이다.
김영 목사님의 이야기 중에 “좋은 것을 깨는 여자”라고 자신을 표현하셨다. 이야기 속에 그 의미를 알게 되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자주 ‘좋은 것이 좋은 거야’라고 말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그 말은 심각한 억압의 말임을 알 수 있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평화로운 말처럼 들린다. 문제 삼지 말고, 갈등을 만들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는 뉘앙스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암묵적 억압의 힘을 가진 말이다. 또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분위기를 깨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 부정의를 드러내는 사람은 까다로운, 좋지 않게 만드는 사람으로 만들어 결국 피해자나 약한 사람의 목소리를 침묵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한다. 또한 ‘좋은 게 좋다’라는 말 한마디로 문제는 덮이고, 상처는 남는다. 결국 권력 있는 쪽이 편해지는 말이다.
진정한 공동체는 잘못을 바로잡고, 상처를 회복하고, 정의를 세우고, 서로를 존중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말을 쓰면 공동체는 ‘진짜 건강’ 대신 ‘겉보기의 평화’만 추구하게 된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억눌린 감정이 쌓이고, 깊은 신뢰는 무너지고, 결국 더 큰 파괴가 찾아오게 된다. 이 시대의 교회가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이다.
혹 우리 교회에는 ‘좋은 게 좋은 것이야’라는 말로 혹 거짓된 평화로 포장되어 지나가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인간관계는 어떤가? 우리의 가정은, 우리의 직장에는 이런 문제가 없을까?
‘좋은 것을 깨는 여자’라는 한 마디가 많은 생각을 이루게 된 한 주간이었다. 상대방에게 질문하고 듣는(경청) 것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말은 줄이고 듣는 시간을 더 내야겠다. 갈수록 그 일이 힘들어지는 나이가 되어가지만 말이다. 80이 넘으신 김영 목사님은 그 부분에도 절제하는 목사였다.
만남은 많은 것을 새롭게 하는 일을 만든다. 상대방에 대해 더 알게 되고, 대화를 통해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도전을 주기도 한다. 힘을 내게 하고, 그 길을 더 성실하게 살아가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특히 인격적 존재의 만남,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을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도 만남을 귀하게 여긴다. 그 시간이 길면 좋겠지만 극히 짧은 만남을 통해서도 획기적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목사님과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향린교회를 담임하시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각성시키고 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교회로 나아 가게 하는 일에 강한 영향력을 끼쳤던 고(故) 홍근수목사님의 부인, 김영 목사님을 통해서이다. 여성 목사로서 당시 교회 내에서 움츠렸고 숨어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던 여성들을 한 인격적 존재이며 일꾼들로 세워가는 일을 하셨던 분이시다. 물론 지금도 여성들의 자리는 교회에서 너무나 미미한 현실이다.
김영 목사님의 이야기 중에 “좋은 것을 깨는 여자”라고 자신을 표현하셨다. 이야기 속에 그 의미를 알게 되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자주 ‘좋은 것이 좋은 거야’라고 말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그 말은 심각한 억압의 말임을 알 수 있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평화로운 말처럼 들린다. 문제 삼지 말고, 갈등을 만들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는 뉘앙스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암묵적 억압의 힘을 가진 말이다. 또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분위기를 깨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 부정의를 드러내는 사람은 까다로운, 좋지 않게 만드는 사람으로 만들어 결국 피해자나 약한 사람의 목소리를 침묵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한다. 또한 ‘좋은 게 좋다’라는 말 한마디로 문제는 덮이고, 상처는 남는다. 결국 권력 있는 쪽이 편해지는 말이다.
진정한 공동체는 잘못을 바로잡고, 상처를 회복하고, 정의를 세우고, 서로를 존중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말을 쓰면 공동체는 ‘진짜 건강’ 대신 ‘겉보기의 평화’만 추구하게 된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억눌린 감정이 쌓이고, 깊은 신뢰는 무너지고, 결국 더 큰 파괴가 찾아오게 된다. 이 시대의 교회가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이다.
혹 우리 교회에는 ‘좋은 게 좋은 것이야’라는 말로 혹 거짓된 평화로 포장되어 지나가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인간관계는 어떤가? 우리의 가정은, 우리의 직장에는 이런 문제가 없을까?
‘좋은 것을 깨는 여자’라는 한 마디가 많은 생각을 이루게 된 한 주간이었다. 상대방에게 질문하고 듣는(경청) 것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말은 줄이고 듣는 시간을 더 내야겠다. 갈수록 그 일이 힘들어지는 나이가 되어가지만 말이다. 80이 넘으신 김영 목사님은 그 부분에도 절제하는 목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