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찾아온 통증은 예고 없이 몰아치는 파도 같았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인 채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정작 나를 무겁게 짓누른 건 고통이 아니라, 병실 밖 복도에서 들려온 어떤 대화였다.
"화장실에 못 가는데, 대변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어르신의 간절한 질문이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자, 스스로의 생리적 필요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마주한 것이다. 그 질문에 돌아온 간호사의 대답은 너무도 현실적이었지만, 차가웠다.
"기저귀를 쓰셔야 합니다."
"누가 도와주실 분 있나요?"
"본인이나 가족이 하셔야 합니다."
그 어르신은 그렇게 몇 번을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리고 한 참 후 그 어르신은 말씀하셨다. “그럼 나 집에 갈래요…”
이 장면은 단순한 병원 내의 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과 무너짐 사이, 가느다란 선 위에서 외롭게 흔들리는 존재의 모습이다. 김혜령 교수가 쓴 책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처럼, 누구나 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느끼는 그 절망감, 부끄러움, 상실감. 그것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 부서지는 순간이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 그에 이르기까지 겪게 되는 무력함일 수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상태,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나약함, 결국 나의 가장 기본적인 존엄마저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순간이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어르신의 말 속에는 이 병원의 복도보다 훨씬 더 긴 외로움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단순한 퇴원이 아닌, 익숙하고 안전한 공간, 최소한의 인간 됨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를 향한 몸부림처럼 들렸다.
나는 그날 밤, 새로운 기도 제목을 하나 더 품게 되었다. 병으로 쓰러지는 날이 온다 해도,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의 손에 남겨진 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기를. 무력해지지 않고 떠날 수 있기를. 용변 하나 해결하지 못해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 없이,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지킬 수 있기를. 이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술 후 찾아온 통증은 예고 없이 몰아치는 파도 같았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인 채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정작 나를 무겁게 짓누른 건 고통이 아니라, 병실 밖 복도에서 들려온 어떤 대화였다.
"화장실에 못 가는데, 대변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어르신의 간절한 질문이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자, 스스로의 생리적 필요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마주한 것이다. 그 질문에 돌아온 간호사의 대답은 너무도 현실적이었지만, 차가웠다.
"기저귀를 쓰셔야 합니다."
"누가 도와주실 분 있나요?"
"본인이나 가족이 하셔야 합니다."
그 어르신은 그렇게 몇 번을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리고 한 참 후 그 어르신은 말씀하셨다. “그럼 나 집에 갈래요…”
이 장면은 단순한 병원 내의 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과 무너짐 사이, 가느다란 선 위에서 외롭게 흔들리는 존재의 모습이다. 김혜령 교수가 쓴 책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처럼, 누구나 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느끼는 그 절망감, 부끄러움, 상실감. 그것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 부서지는 순간이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 그에 이르기까지 겪게 되는 무력함일 수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상태,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나약함, 결국 나의 가장 기본적인 존엄마저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순간이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어르신의 말 속에는 이 병원의 복도보다 훨씬 더 긴 외로움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단순한 퇴원이 아닌, 익숙하고 안전한 공간, 최소한의 인간 됨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를 향한 몸부림처럼 들렸다.
나는 그날 밤, 새로운 기도 제목을 하나 더 품게 되었다. 병으로 쓰러지는 날이 온다 해도,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의 손에 남겨진 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기를. 무력해지지 않고 떠날 수 있기를. 용변 하나 해결하지 못해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 없이,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지킬 수 있기를. 이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