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라인

소망의언덕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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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수술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지난 한 주는 하루하루가 분주했다. 고추를 따고 약을 쳤으며, 덜 여문 참깨까지 수확을 마쳤다. 잔디를 깎고, 벼 논둑의 풀을 베었고, 논에 난 피도 뽑았다. 닭장에는 날마다 갈 수 없는 형편이어서 사료통을 가득 채워 자유급식으로 전환했다. 벼 논에 물을 봐달라는 부탁을 동네 지인에게 했다. 그리고 입원 당일 아침에도 고추를 따고 약을 치는 일을 마친 후 병원으로 향할 계획이다.

이렇게 서둘러 움직인 이유는 기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데드라인—정해진 기한이 있기에 우리는 미루지 않고 움직인다. 끝이 있다는 것은 긴장이자 동기이며 때로는 즐거움이 된다. 정해진 시간이 없는 스포츠를 상상해 보라. 긴장감도, 몰입도도 사라질 것이다. 축구가 90분, 야구가 9회라는 규칙을 두는 이유는 바로 그 한정된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 인생에도 끝이 있다. 개인에게는 주님이 부르시는 날이 있고, 세상에는 종말이 있다. 그 끝 날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게으르지 않다. 영원한 심판자이신 주님 앞에 설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간다. 끝을 의식하는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의 태도는 극명히 다르다. 정해진 기간이 있기에, 그날이 오기 전에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다. 또한 그날을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간다. 이것이 신앙인의 삶의 방식이다. 언젠가 내 인생의 마지막이 있음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끝이 있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오늘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우리에게 내일, 그리고 다음이 있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할 일이 아무리 많이 쌓였어도 주님께서 오라 하시면 모든 것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떠나야 한다. 그러니 호흡이 있을 때, 건강할 때,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때 마음에 감동되는 일을 해야 한다. 앙금이 있는 사람과 용서하고, 용서를 빌고 화해해야 한다.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 친구가 한 말이다. “요양원에서 그래도 좀 걸어 다니실 적에 함께 맛있는 외식 한 번 하자고 했던 말을 지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네”라고 했다. 불현 듯 그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에 할 일을 하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디모데후서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