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넘어갑시다.

소망의언덕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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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 승효상 선생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이다. 그가 언젠가 각국의 수도원을 방문하고 쓴 책이 있다. ‘묵상’이라는 책이다. 거기에 그가 방문했던 한 수도원에서의 일이다. 그가 챕터 룸에 들어가서 한 구석에 조용히 앉았다. 챕터 룸은 수도원장이 수도사들을 모아 놓고 베네딕토 수도 규칙서를 한 장씩 읽는 방이며, 수도원 공간 중에서는 제일 화려한 장식이 있는 곳이다. 그만큼 중요한 곳이다. 그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내부 벽의 창틀 밑을 받치는 돌과 벽체가 만나는 부분이 일체가 되어야 하는데 이미 튀어나온 돌을 어떻게 할 수 없어 그 끝부분을 슬며시 뭉개버리고 만 것을 보았다. 틀림없이 건축가는 이 난감한 상황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고, 전체 창을 들어내고 다시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에이, 구석진 끝부분이니 그냥 끝만 뭉개고 말자'라며 두 눈 질끈 감고 마무리한 게 분명했다. 그 완벽한 건축가 수도사도 나와 같은 면이 있었다. 그는 속으로 킬킬 거리며 그 방을 나와 안도 했다는 이야기다.

2022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되돌아보면 좋은 일, 가슴 벅찬 일, 희망에 들떴던 일, 마음 아픈 일등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마음에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아마도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으름이나 자기 유익을 따르느라 하지 못한 일들이 아쉬움으로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수도원의 가장 화려하고 중요한 곳을 ‘에이, 구석진 곳의 끝부분이니 그냥 뭉개고 말자’라며 아쉬움을 달랬던 건축가를 생각하게 된다. 아쉽지만 그냥 묻어두고 지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있음에도 지나갈 수 있는 마음의 결정도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지만 매듭을 짓고 넘어가는 결정도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저의 한 해를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 게 너무 많다. 다시 년 초로 돌아가 시작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그럴 수 없을 때는 그냥 인정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다. 이것이 수도원의 중요한 방을 대충 마무리하며 지나갔던 위대한 건축가의 방식이었다. 이 방식이 오늘 나에게도 필요하다.


카톡에 어떤 분이 이런 것을 보내오셨다. 

   “배우자의 사소한 실수를 너무 나무라지 맙시다. 아무렴 댁과 결혼한 실수에 비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