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소망의언덕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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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이 만 3년이 되어간다. 3년, 전 세계적인 공포 속에 이전의 삶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이전의 삶을 바라보았다. 왜 그랬을까요? 익숙하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전진하는, 발전하는 세상에서 퇴보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예전의 일상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다시 교회를 바라본다. 성도들의 예배 참석율이 30~50% 줄었다는 보고다. 수도권에서는 100여명이 모인 교회가 문을 닫았다. 그 교회 목사는 택시 운전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연령분포는 역삼각형으로 변했다. 3년이 지난 오늘의 모습은 처참하다.

  이 위기에 그래도 여전히 예배당에 나오고 자리를 지키는 성도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대부분이 소위 '불로불로파'이다. 보수적 색채를 가진 분들이다. 기복적 신앙관을 가진 분들이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던 분들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동안 한국 교회에 많은 부정적 영향력과 외적 이미지에 손상을 입혔던 분들이 위기 상황에서 한국 교회를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위 진보적, 옳은 방향을 추구한다는 신앙인들은 코로나 기간 3년 동안 한 번도 예배당에 나오지 않는 분들이 많다. 코로나가 끝나도 그들의 대부분은 교회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핏대를 세워 외치던 그들은 어찌하여 이 위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인가. 왜 그럴까.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니 그 차이는 '경험'이라는 생각이다.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다. 불로 불로를 외치던 시대에 비록 기복적 기도와 잘못된 열정들이었음에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찐하게 만난 경험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 체험, 그것이 위기 상황에서 극명한 차이를 만든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말한다. 이론일 수 없다.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 이후 아무일도 없었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수도원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하는 말이 이렇다. "이제 예전의 부르짖던 기도에서 관상기도(말씀기도)로 가야한다"고 말이다. 저는 이렇게 말한다. "관상기도하는 것 좋지만, 부르짖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생겼으면 합니다"라고 말이다. 기도를 통해 순종의 힘을 얻어 하나님의 말씀(뜻)을 순종하는 삶이 신앙생활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위기와 절망적 상황에서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생각난다. 그 길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중간에 합류하신다. 그리고 주님께서 모세와 예언자로부터 시작해서 성경 전체에서(구약) 자기에 관한여 쓴 일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주님이 홀연히 사라진 뒤에 제자들이 하는 말이다. '길에서 그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던가?'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다시 신앙을 생각한다. 신앙생활이란, 날마다의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물론 그 경험은 다양할 것이다. 그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없다면 그 신앙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특히 돌발적, 위기적 상황에서는 더 그럴 것이다. 말씀(성경)을 전할 때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 설레이게 하는 것이 부흥이 아닐까 한다. 

   이 시대에 다시 그 부흥을 갈망한다.